대한민국 사람은 저마다 정의를 꿈꾼다
- 멀고느린구름
2. 네버엔딩, 이데올로기 시대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대체 뭘까. 국어사전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사회 집단에 있어서 사상, 행동, 생활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이나 신조의 체계. 역사적, 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사상과 의식의 체계이다. ‘이념’으로 순화.
마지막 문장에서 과연 ‘이념’이라는 말이 순화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지만 대체로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서구 유럽의 역사를 돌아보아야만 비로소 ‘이데올로기’의 의미가 분명해질 것 같다. 최초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좌우의 대립이 아니라, ‘왕정’이냐 ‘민주’냐 였다. 한 나라의 주권이 왕에게서 나오느냐, 국민에게서 나오느냐 이 이데올로기의 차이는 인간의 삶을 근원적으로 다르게 만든다. 이렇게 얘기하면 국어사전의 설명이 조금 와닿는다. 두 번째 이데올로기 대립은 사실 왕정이냐 민주냐 보다는 조금 밋밋한 대립이었다. 알다시피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었다. 두 체제 모두 왕정이냐 민주냐에서는 ‘민주’를 택했다. 이 이데올로기 싸움은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패러다임이 민주주의로 이동한 이래로 제 3기 째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더이상 왕정이냐 민주냐를 고민하지 않는다. 민주다. 그리고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도 고민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다. 민주와 자본주의를 전제로 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출현한 이데올로기 대립을 나는 바로 ‘정의’의 대립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새누리당을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새누리당을 수구 독재 정당이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따져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새누리당은 민주주의 체제 속에 있으며, 그 틀을 굳이 붕괴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왕당파가 아니다. 친박 의원들이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해도 혁명을 일으켜 박근혜 대통령을 왕으로 만들 수는 없고, 모르긴 몰라도 아무도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원내 유일의 진보 정당인 정의당을 반대편의 사람들은 종북좌파 사회주의 정당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정의당의 강령이나 활동 내용 등을 보면 북한에 대해서 과거 민노당 시절과 달리 비판도 잘 하고, 무슨 일방적인 주한미군 철수나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단지 반대편 당들에 비해 복지와 사회적 재분배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시대는 이 만큼 앞으로 걸어와 있다. 수구 세력이 왕정체제를 도모할 수 없고, 사회주의 세력이 무력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두 가치가 절대적 전제로 자리매김한 사회에서 대립은 미세하게 일어난다.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가진 개인들이 각자의 정의론을 들고 나와 말과 글, 프레임과 여론 등을 극적으로 활용해 누가 진짜 정의의 사도인가를 두고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정의의 사도들을 유형별로 소개하면 다음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1번 사도. 경제가 곧 정의다. 경제만 살릴 수 있으면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다. 경제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고 경제만 살아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 될 수 있다. 물론, 경제를 살리는 해법은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감옥에 있는 기업인들을 너그럽게 사면해주고, 대기업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이다. 경제가 없으면 대한민국도 없다.
2번 사도. 국가가 곧 정의다. 태극기를 보면 괜히 눈물이 난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을 본 후 죽고 싶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영원한 대통령 박정희가 곧 대한민국이다. 이 두 대통령을 폄훼하는 것은 곧 대한민국을 능멸하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을 능멸하는 자들은 당연히 북한의 편이며 간첩일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은 국민 속에 암약하고 있는 남파 간첩들을 솎아내기 위해 도감청을 더욱 열심히 해야한다.
3번 사도. 중도가 곧 정의다. 대한민국은 수꼴과 좌빨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수꼴은 새누리당이고, 좌빨은 친노 세력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중도층을 공략해야 하므로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된 정책을 내걸어서는 안 된다. 필요하면 보수인 척도 하고, 진보인 척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튼 정권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은 후에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국민 통합을 해서 중간 길을 잘 가면 되지 않을까. 선명성을 강조하는 자들은 정치에 대해서 1도 모르는 어린애들이다.
4번 사도. 사람이 곧 정의다.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를 매일 꿈꾼다. 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다. 아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곧 올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지도자는 사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 좋은 사람이 정치도 잘 할 것이므로. 사람 좋은 사람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믿습니다.
5번 사도. 진보가 곧 정의다. 진보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 진보 정당이 원내교섭 단체만 되면 대한민국은 혁명적으로 변화한다. 복지를 유럽 수준으로 늘려가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가 보호 되어야 한다.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자연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민의를 대변할 수 있도록 선거 제도를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개선해야 한다. 제발 해야 한다. 제발 내 말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맞는 부분도 많으니까 잠깐만 좀 들어주세요. 안 들어? 머저리들 같으니.
이 외에도 녹색을 중심으로 한 변화를 꿈꾸는 녹색당이나 아직 사회주의 혁명의 꿈을 완전히 접지는 않은 노동당 같은 정의의 사도도 있지만 아직 큰 흐름은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1번부터 5번까지의 정의 스펙트럼 속에서 합종연횡을 하는 개인들도 분명히 있다. 4번의 땅에서 5번을 보는 사람도 있고, 1번의 땅에서 2번이나 3번을 보는 사람도 있다. 더 멀리를 보는 사도들도 있을 수 있다.
각 사도들을 개인적으로 촌평해보면 1번과 2번은 우리가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계속 곁에 두었던 정의의 사도들이다. 이제 좀 그만 보고 싶다. 3번 사도는 목소리는 큰데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4번 사도는 뭘하려는 건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5번 사도는 뭘하고 싶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알겠는데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이 다섯 개의 정의가 치열하게 맞붙어 싸우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 중 하나의 ‘정의’에 표를 주고 있다. 계급 투표는 있어 본 적이 별로 없고, 지역 투표의 구도가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요즘, 새롭게 나타나는 투표 성향을 나는 ‘정의 투표’ 라고 본다.
- 다음 편, 3. '쉬운 정의론'을 갖춘 세력이 정의 투표의 승자가 된다'에서 계속
2015. 7. 28.
'멀고느린구름 > 오늘의 정치, 내일의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바꿀 우리 정치의 모습 1 (0) | 2015.08.31 |
---|---|
대한민국 사람은 저마다 정의를 꿈꾼다 3(완) (0) | 2015.08.21 |
대한민국 사람은 저마다 정의를 꿈꾼다 1 (0) | 2015.07.17 |
자전거 도둑 (0) | 2015.07.08 |
이런 세상 어때요? - 5. 한 청년의 진보정당 대표 출마선언문 (0) | 2015.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