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은 연동형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정당이 국회 원내를 구성하고 있다. 정부와 각 정당은 '대연정'이라는 방식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선진 정치문화를 만들었다. 



연동형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바꿀 우리 정치의 모습 2(완)

- 멀고느린구름





애국세력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언제까지 새누리당의 눈치를 볼 것인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정치 체계로서 도입하고 있는 나라다. 민주주의 국가란 각 개인의 생각이 존중되는 나라이며, 각 개인들의 정치적 의견이 모인 집합체인 정당을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는 나라이다. 단, 이론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 이론에 부합하는 나라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는 흔히 대한민국의 정당을 여당과 야당으로 나누지만, 국민의 의견도 이렇게 똑 두 세력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대한민국에는 이른바 '애국세력'이라는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의 대표적인 논객이 바로 '변희재' 미디어워치대표일 것이다. 변희재 대표는 지난 서울 관악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0.74%의 득표를 했다. 현행 선거제도로는 국회의원이 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지지율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전까지는 야당의 텃밭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진보-개혁적 성향의 유권자가 많은 관악구에도 약 1%의 애국세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쉽게 '다수결의 원칙'과 혼동한다. 민주주의는 결코 세가 더 많은 쪽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따라야만 한다는 약육강식의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선택 받지 못한 쪽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으려 하는 자세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소수 의견'에 대한 태도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것이다. 


'애국세력'은 국가를 최우선에 두고, 반공을 앞세우되 서민과 약자를 정치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다. (실제로 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일단 논의의 밖에 두자.) 나는 이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들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주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의견이라도 그런 의견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애국세력'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상당 부분 의견의 일치를 이루는 의원들이 새누리당에 꽤 있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의원들과 '애국세력'이 별도로 창당을 해서 '애국정당'을 꾸린다면 최소한 3~4% 정도의 지지율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3~4%의 지지율이면 현재 원내 3당인 진보 정당 '정의당'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지지율이다. 


그러나, 신생 '애국정당'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대한민국에 1도 없다. 왜냐하면 이 애국정당이 3% 내외의 지지율로 국회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40% 지지율에 육박하는 새누리당의 후보와 싸워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후보가 말도 안 되게 하자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후보의 지지율은 정당의 지지율과 비례한다. 그러므로 '애국정당'은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공적으로 알릴 채널이 영원히 없을 가능성이 높다. 변희재 대표는 불행하게도 영원히 SNS상의 애국영웅으로만 남겨질 것이다. 변희재 대표뿐만 아니라 애국진영의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아무리 새누리당을 욕해도, 새누리당이 좌편향되었다고 말해도 새누리당은 전혀 '애국정당'의 소수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정치 제도 하에서 애국정당이 제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의 눈치를 살살 살피는 수밖에 없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애국정당'은 다음 총선에서 곧바로 6석을 가진 원내정당이 된다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이 도입하고자 하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란 국회의원 의석을 정당의 지지율에 비례하여 배분하는 정치제도로 유럽의 선진 민주국가들이 대체로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의석은 알다시피 300석이다. 다음 총선에서 만약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전격 도입되고, '애국정당'이 최소 변희재 대표의 지지율의 2배 정도인 2%대의 지지율을 얻었다고 가정해보자. 


애국정당은 다음 총선에서 곧바로 '6석'의 의석을 지닌 당당한 원내정당이 된다. 국민의 100명 중 2명이 애국세력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면, 동일하게 국회에서도 의원 100명 중에 2명은 애국세력의 의견을 정책 결정에 반영하고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6석은 지금의 정의당보다 의석수가 더 많다. 놀라운 일 아닌가? 



* 독일의 원내 정당 구성. 우리도 싸우지 말고 각자의 소신을 가지고 국회에 들어 가자. 독일의 경우 '기사련'이 바로 우리나라의 '애국세력'에 해당할 것인데... 저 놀라운 의석수를 보라. 우리에 맞게 비율을 반으로 줄여도 28석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놀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제도야 말로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는 다양한 의견이 있음에도 그 의견이 국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정치 체계를 수십 년간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이야 말로 놀라운 것이다. 



후보 단일화, 계파정치가 모두 일거에 사라지는, 그야말로 마법의 선거제도 


친노, 비노, 친박, 비박, 반박, 친이, 반이, 가짜 진보, 진짜 진보, 애국보수, 합리적 보수. 말도 참 많다. 우리나라 정치 사건의 태반이 자기들끼리 집안 싸움하는 내용이다. 지긋지긋하고, 선거 때마다 후보 단일화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도 제발 그만 듣고 싶다. 자기 집안에서 자꾸 불협화음이 나고 싸움이 나는 것은 서로 성격이 다른 애들끼리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제발 좀 이혼을 했으면 좋겠는데, 이혼하겠다는 말만하고 이혼은 하지 않는다. 왜냐? 이혼을 하면 먼저 짐 싸서 나간 쪽은 당선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꾸만 안에서 싸우려고 한다. 여야가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선거는 새누리당이거나 새정치민주연합이거나 1번 아니면 2번의 기호를 달아야만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서로 마음이 안 맞아도 무조건 1번당 아니면 2번당에 들어가서 지지고 볶고를 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이 양당은 어느새 거대 기득권이 되어서 '공천권'이라는 자체 권력을 휘두르며 좋은 뜻을 가지고 정치에 입문하려는 사람들도 본뜻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만다.(그런 점에서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주장한 '오픈 프라이머리'는 일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정치 신인들의 진입을 막는다는 단점을 보완해야만 한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그 누구도 이런 소모적인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정당을 만들고, 열심히 홍보해서 국민의 마음을 잡으면 된다. 단 1%라도 지지율을 얻으면 원내 정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친노, 비노, 친박, 비박, 반박, 친이, 반이, 가짜 진보, 진짜 진보, 애국보수, 합리적 보수가 모두 분당을 해서 각자의 정당을 만들어도 모두 다 국회에 입성할 수 있다. 피곤한 내부 다툼 없이 말이다. 이 얼마나 마법의 선거제도인가?



각자의 정의를 위해 뛰자, 그리고 진정한 협의 정치를 시작하자


우리 중 누구도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두가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있고, 그 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자. 민주주의는 인간의 약점을 인정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통해 세상을 조금씩 진전시켜 나가자는 제도이다. 지금의 낡은 양당제는 어느 한 정당이 다수 의석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면 130석이 넘는 의석을 가진 야당이라고 해도 전혀 막을 수 없는 제도가 되어 있다. 국민 절반 가량의 의사가 힘에 의해 쉽게 묵살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고, 정당의 지지율 대로 의석 수가 배분되어 다당제가 정착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소유할 수 없게 되고, 반드시 정당 간에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국민과 타 정당의 마음을 얻어야만 정책을 강행할 수 있게 된다. 북한식의 일당 독재는 영구히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말로만 협의의 정치, 상생의 정치할 것이 아니다. 아예 제도로서 이렇게 못을 박아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가 한 두번 정치인들에게 속아 왔는가. 


*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결코 야당에게만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 지형상 보수 의견을 지닌 정당들이 항상 더 많은 의석을 갖게 되어 있다. (위 표 상으로는 보수 161 : 진보-개혁 159 이지만 민주당 내에는 보수적 성향의 의원이 최소 20%는 있을 것이다. 이들이 나간다고 가정하면 결국 보수 60% : 진보 40%의 지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애국세력과 새누리당의 친박 지지자 분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현재 여러분들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유보시킨다면 아마 분명 이 정권이 끝나고 나면 여러분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 및 친이계와 손을 잡을 것이고, 새누리당은 시대의 변화와 젊은 유권자들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분명 진보적인 정책들을 앞세울 것이다.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자기의 정의만 내세워서는 당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제도 도입에 나선다면 아마도 영구히 국회 내에 여러분의 자리가 보장될 것이다. 왜냐하면 애국세력은 언제나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는 유권자들은 최소한 앞으로 20년 동안은 10~20% 정도의 지지율로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1위 후보 독식 선거제도 때문에 사표로 버려진 유권자의 표가 1천 만 표에 달한다고 한다. 국민 25%의 의사가 휴지 조각이 되어온 셈이다. 이 휴지 조각들 속에 민주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꽃인 '소수 의견'이 있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문제는 여야 잇속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는가 그대로 머무는가, 아니면 오히려 퇴보하는가의 문제다. 


2015. 9. 3. 멀고느린구름.




날짜

2015. 9. 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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