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을 가르치는 일

- 멀고느린구름 




재작년 정도였던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우리 사회를 한 때 흔들었다. 대선을 앞두고 각 정치인이 저마다 자신이 정의라고 외치던 때여서 였을까. 비단, 대선의 영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는 남북으로 나뉜 것도 모자라, 동서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 서로를 불신하며 평행선을 그려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옳은가를 가르치는 일은 민감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와 같은 국민 상식의 범주에 있어서도 일부 학자들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상대를 향해 편향된 사관을 주입시키고 있다고 강변하는 시대다. 


논란이 된 ‘한국사’는 아니지만 나는 작년 한 해 고등과정의 아이들에게 ‘서양철학사’와 ‘논술’을 가르쳤었다. 일정 수준의 보편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는 있겠으나 ‘역사’는 수학과 같은 보편적 진리가 아니다. 누가와서 풀이를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어떤 사관에 의해, 누가, 어느 시점,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역사의 해석은 달라지게 된다. 가장 쉬운 예로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들 수 있겠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드라마 등 미디어 속에 그려지는 광해군은 연산군과 같은 폐륜아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던 것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외교에 능한 군주, 진정으로 백성의 안위를 걱정한 임금으로 위상이 변화한 것이다. 광해군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바꾼 것이 아니다. 단지, 그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한 것뿐이다. 


서양철학사를 가르치며 어려웠던 것은 서양의 철학자들의 주장과 몇몇 아이들의 종교적 신념이 충돌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철학도로서 동서양 철학과 여러 나라의 종교를 일체의 편견없이 넘나들며 공부했던 나의 입장은 분명했다. 학문에 성역은 없다. 철학의 대전제는 곧 무전제다. 아무것도 전제하지 않는 맑은 정신으로 세계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것이 철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이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전제를 더 두었다. 어떠한 주장도 우위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령, 합리성과 종교적 믿음 양자 가운데 합리성이 더 우월한 것이라고 전제하지 않았다. 양자는 한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일 뿐이며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나는 특히 중세철학 부분을 진행하며 기독교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기독교의 교리와 예수의 가르침에 담긴 위대한 점을 알려주었고, 빈약한 논리로 신의 존재를 믿고 있을 뿐인 아이들에게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철학자들의 논리를 소개하고 그것을 반박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수업 처음부터 끝까지 신의 존재에 대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선택은 각자 아이들의 몫으로 남겼다. 


논술 수업은 좀 더 흥미롭게 진행했다. 토론의 주제를 정하면 아이들이 서로 의견을 모아 그 주제에 찬성을 할 것인지 반대 입장에 설 것인지 결정하고, 나는 무조건 그 반대편에서 논리를 펴서 아이들과 대결하는 형식이었다.  


첫 번째 주제는 ‘독도는 한국 영토인가’였다. 아이들은 자신만만하게 ‘찬성’ 쪽에 섰다. 자연히 나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일주일의 시간을 두고 서로 연구를 해왔다. 아이들은 일곱명이고 나는 혼자였으니, 조사하는 양에서도 큰 차이가 날 수 있는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머리에 담아내는 경험치로 따지면 내가 훨씬 우위에 있었다. 결전의 날이 왔고, 토론이 시작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제법 두툼한 프린트물을 뽑아와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1600년경 조선시대의 자료에서부터 중국 쪽의 자료, 일본 당국의 자료 등등 여러가지 것들이 제시됐다. 허나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체로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수준의 자료들을 모아왔다. 그에 비해 나는 국회도서관 등에 비치된 각종 학술 논문과 독도와 관련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한 수 백 페이지의 책들을 여러 권 읽고 온 것이었다. 결국, 나는 매국노가 되고 말았다. 적어도 그 수업에서 독도는 일본 땅으로 결론 지어지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아이들이 미처 짚어내지 못했던 부분과 내가 주장한 것들의 모순점들을 알려주었다. 


이후에도 ‘SM 엔터테인먼트와 YG 엔터테인먼트 중 어느 쪽이 더 성장할 것인가’, ‘게임은 중독되는 것인가’ 등등 흥미로운 주제로 토론을 이어나갔다. 내가 이 토론 수업에서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관점’ 혹은 ‘입장’의 차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한 관점도 만고불변의 ‘진리’가 될 수는 없음을 체험하기를 바랐다. 어떤 관점이든지 헛점이 있기 마련이고, 이렇게 보면 옳은 것이 저렇게 보면 옳지 않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 


처음 이 글을 나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로 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어떤 어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혹은 믿고 있는 정의를 아이들에게 강력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교육적 입장에 동의한다면 마찬가지로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교육적 입장도 옳다고 해야 공평할 것이다. 그러니까 최근에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교학사 교과서를 예로 들어보자. 교학사의 역사 기술이 잘못되었으며 진정한 역사를 강력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교학사 교과서 편찬자들 역시 마찬가지의 논리로 자신들의 역사가 정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서로 상반된 것들을 각각 불변의 정의라고 교육받고 자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보자. 현재의 대결적인 우리 사회가 끝없이 연장되는 미래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나는 지난 한 해, 철학과 논술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결코 ‘정의’를 가르치지 않았다. 다만, 정의를 탐구해가는 방법을 가르쳤을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관점과 그들 간의 차이, 그리고 오해, 그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방법,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타인의 관점에 너그러워지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옳음’은 가르쳐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사로서 내가 무엇이 더 옳은 것 같다고 아이들에게 '주장'하거나 소개해줄 수는 있겠다. 그러나 항상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아이들의 이견에 열려 있어야 할 것이다. 


공자가 예의 달인이라는 명성을 얻어, 하늘에 제를 지내는 제식을 맡게 되었을 때의 일화가 논어에 전해져 온다. 예의 프로페셔널이라고 불러놨더니 공자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다니면서 제식의 절차를 일일이 확인하더라는 것이다. 공자의 명성에 주눅이 들었던 관리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고, 한 관리가 공자에게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예의 달인이라고 하면서, 뭘 그렇게 일일 묻고 다니는 거요.”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이렇게 묻는 것이 바로 예라고 하는 것이오.”


세계의 4대 성인이라고 하는 공자도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하물며 우리들이 그저 나이를 먹었다고, 책 좀 더 읽었다고 함부로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단정지어 가르칠 수 있겠는가. 


2014. 5. 7. 



날짜

2014. 5. 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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