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교육부는 엉뚱하게도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을 전면 취소시켰습니다만, 대안학교들은 안전하게 예정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도보여행을 통해 소중한 배움을 얻고 돌아온 파주자유학교 학생의 글을 소개합니다.
날마다 주어진 길을 걷다 돌아오니
- 연지현 (파주자유학교 8학년)
날마다 주어진 길을 걷다 돌아오니 어느덧 5월이 되어 있네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2주도 훌쩍 지나가 버렸구요. 매일 걷는 2주 동안의 봄 들살이라… 사실 첫 코스를 걷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아름다운 봄 풍경도 감상하며 하하호호 소리 넘치는 들살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가 있었지만… 하하호호 소리보다는 흑흑헉헉 소리에 가까웠달까요? 그럼 지금부터는 더 자세한 하루하루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죠.
첫째 날
이번 여행도 역시 대화역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했답니다. 이정도 됐으면 이젠 거의 전통에 가까운 수준이죠? ㅎㅎㅎ 하지만 특이했던 점은 아침 일찍이 아닌! 오전 11시쯤 느지막이 출발했다는 점! 다음 날 마주할 길은 한치도 예상하지 못한 채 그저 여유롭고 설레고 두근거렸죠. 그러나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하더군요. 풍경이 점점 도시에서 시골로, 건물에서 나무로 변하는 게 보였거든요. 귀가를 마치고 다시 진안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면서.. 뭔가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계곡에서도 놀고 산책도 다니고…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어요. 먼저 도착하신 소나무도 저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죠. 진안에서 올라와 본교 학생, 선생님들과 약간 서먹서먹한 느낌이 있었는데 소나무를 뵈니 무척 반갑더라구요! 이렇게 첫째 날은 굉장히 순조롭게 흘러갔답니다.
둘째 날
드디어 앞으로 14일간 펼쳐질 273km에 이르는 장대한 둘레길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확실히 기선제압 당해버리고 말았답니다. 시작부터 한동안 오르막길의 아름다운 향연이었지요. 그래도 이 때 둘레길의 실제 모습을 알아차린 건 좋은 일이었어요. 예로부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에요. 뭐 그렇다고 둘레길이랑 싸우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좀 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지치고 뭔가 내 짐의 무게가 심히 많이 나간다는 사실에 제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죠. 카메라를 괜히 가져왔나 싶기도 하고 다른 배낭을 가져 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사진을 정리하며 보니 사진기를 가져간 일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날 오전에 소나무가 저를 공식 사진사로 위촉(?)하시며 사진을 피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지요. 그 이후로도 피하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사진 찍을 맛이 좀 나더라구요! 성심원은 정말 한참 걷다가 슬슬 버티기 힘들어질 때쯤 도착한 것 같아요. 아이들의 수다가 점점 투정에서 짜증으로 넘어가려 할 때! 따뜻한 집과 엄마의 품을 연상케 하는 성경의 구절들이 벽을 따라 쓰여있는 성심원이 나타났어요. (나에게로 와서 편히 쉬거라~ 라던지..) 성심원은 수도원이자 한센병을 앓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활하시는 곳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온수와 맛있는 밥 따뜻한 잠자리 모든 게 있어 저희가 편안할 수 있었던 숙소 중 한 곳이었어요.
셋째 날
전 날의 피로가 비교적 잘 회복이 되어서 놀랍던 아침이었습니다. 역시 젊음만큼 강력한 힘은 없나 봅니다. 다들 벌떡 벌떡 잘 일어나더라구요. (선생님들은 괜찮으셨을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날 코스는 정말 만만치 않았어요. 2주동안 걸은 코스 중에 오르막이 가장 가파르고 길었던 코스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수두룩하게 만날 수 있던 재와는 다르게 봉은 웅석봉과 형제봉 딱 두 가지였거든요. 그 중 웅석봉을 올랐던 날이 바로 셋째 날이었습니다. 사실 오르막길을 대처하는 자세는 묵묵히 올라가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6학년 아이들은 먹고 싶은 음식들을 외치며 오르기도 하더군요. 8,9 학년들은 그 모습을 보며 “우리도 쟤들 나이 땐 그랬지… 근데 요즘은 예전 같지가 않아.. 그냥 걷는 것 만으로도 벅차다구…”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그렇게 올라간 정상(?)에서의 점심은 참 맛있었어요! 점심을 먹고부터는 순조로운 내리막길이 숙소까지 이어졌지요. 아침내내 힘겹게 올라야했던 오르막길에 대한 보답이었던 것 같네요. 정말 지리산은 사람을 들었다 놨다해요…
넷째 날
넷째 날은 아침이 정말 맛있는 날이었어요. 메기국(?)이 나왔는데 애들이 다 생선을 안먹더라구요. 진짜 부드럽고 맛있는데! 운리 이장님 댁에서 먹었던 밥은 정말 집밥 같아서 지쳤던 마음이 조금 풀리기도 했던 것 같네요. 이 날 꾹꾹 눌러담겨 있던 도시락은 참 인상 깊었었지요.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대부분이 배가 터지는데도 되도록이면 남기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쓰더라구요~;; 이 날의 목적지는 유점마을 이었는데 숙소까지 30여분을 남겨두고 나타난 끝없는 오르막 덕분에 막판에 다들 정신이 바짝 들었죠. 말이 30분이지 체감시간은 한 3시간이었던 것 같네요. 저녁 메뉴는 완벽한 산나물 정식이었어요. 그런데도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여자 애들은 대부분 두 그릇씩 먹은 것 같아요. 그리고 들살이 중 처음으로 과일을 먹을 수 있었고요. 아저씨가 난로 불을 떼 주시는 덕분에 빨래도 바싹 말릴 수 있었답니다. 아직도 참 감사해요~ 그리고 이 날을 기점으로 건우, 정민, 진이가 잠시 파주로 떠나야 했었죠. 같이 길을 걷던 친구로써 참 안타깝기도하고 굉장히 섭섭한 기분일 것 같기도 했었지요. 세 친구 모두 집에서 지내는 동안 마음이 편치는 않았던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나중에 마무리는 같이 지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답니다.
다섯째 날
이 날 건우가 떠나면서 가방을 제 것과 바꿔주어서 정말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답니다. 정말 이 가방 무게를 어찌 2주동안 버틸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거든요. 가방에 쇠 프레임이 있어서인지 어깨가 빠질 것 같더라구요.;; 건우의 가방은 새 가방 같았는데;;; 일주일동안 너무 잘 썼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 고마워~
이 날은 걸으면서 중간에 오빠들이 배낭 뒷주머니가 열려있다고 하더라구요. 뭐 잃어버린 물건은 없냐고 묻는 게 수상하긴 했지만 언제나처럼 놀리는 줄 알고 자신있게 없다고 외쳤지요. 하지만 한참 뒤에 카메라 충전 케이블이 없어진 걸 알아차렸습니다. 이 때부터 멘붕하기 시작했어요. 오빠들이 네가 잃어버린 게 없다고 말해서 떨어진 걸 줍지 않고 그냥 걸어왔더라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충전기 본체는 있고 케이블만 없다는 사실로 만족해야 했어요. 정신을 차리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답니다. 사실 오빠들이 주웠을 수 있다는 기대도 마음속에서 벗어나질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영보형이 제 케이블을 주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으헝헝.. 자기가 잃어버리는 건 아무도 주워주질 못하는데 자기는 계속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줍는다며 자기는 실컷 놀려도 좋으니까 찾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계속 놀리면서 주웠다 안주웠다로 말을 바꿔서 약간 짜증이 나긴 했지만 찾고나니 고맙긴 하더라구요. 충전기를 찾고는 힘이 만땅으로 충전되어서 걸어서 이후로는 힘든지도 모르고 혼자 맨 뒤에서 모든 사람을 재친 것 같았어요. 기껏 무거운 사진기 가져왔는데 충전을 못해서 사진을 못 찍으면 너무 슬프잖아요.ㅜㅜ
정신적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숙소로 향하는데 이 날도 직전에 고개 하나가 있더라구요. 넘어가서도 숙소를 찾아 여기저기 물어 물어 도착했는데 처음 물어봤던 할아버지 말씀이 정확했었더라구요. 사투리와 몽롱해진 정신 때문에 확실하지 않았는데 도착하고 나니 완벽하게 알아들은 것 같아요. ;; 약 25km를 걸은 저희를 맞이 한 건 잔칫상과 지혁이 부모님이 보내주셨던 치킨이었답니다! 정말 다음날 길 위에서 까지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황토방을 보고 따스한 잠자리를 기대하며 잤지만 확실한 교훈 하나만을 얻고 갔습니다. 아무리 황토방일지라도 불을 떼지 않으면 춥다는 거;;; 이불 속에 파묻혀 잤네요.
여섯째 날
어느덧 주말이네요. 진안은 그래도 주말은 쉬지만 지리산은 다르답니다. 평일과 마찬가지로 걷네요… 그래도 키로 수가 훨씬 줄었답니다. (사실 이건 폭풍 오르막이 있어서 그런 감이 없잖아 있어요.) 기나긴 오르막을 헤치고 드디어 내리막길인데 다들 쉬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니 밑에 풍경이 장난 아니었어요. 조각보 같은 밭과 섬진강이 차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더라구요. 숙소는 참 아름다웠어요. 반달이 떠있었거든요. (농담 농담 ㅋㅋㅋ) 반달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달려가 안겼답니다. 정말 반갑더라구요. 이 날 밤산책을 하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학생들도 엄마가 보고싶다는 말과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다들 한 번쯤은 둘레길 들살이가 예정보다 일찍 끝나는 꿈을 꿨다고 하더라구요. 역시 일주일이 고비였던 것 같아요.
일곱째 날
반달과 인아가 짧은 방문을 마무리하고 발바닥을 다친 근희 언니와 떠나셨답니다. 그리고 저와 일주일을 함께해준 포크도 제 품을 떠났더라지요. 설거지 해놓을 때 이 민박집에 포크꽂이가 있는 걸 보고 성배에게 감쪽같다고 자랑하며 다른 포크들 틈에 꽂아놓았었는데 정말 감쪽같이 놓고 온 것 있죠. 이 이야기를 메아리한테 하니까 그저 웃으시더라구요. 으헝.. 사실 출발하고 그리 오래되지 않아 떠오르긴 했는데 소나무가 별 것 아니니 포기해도 괜찮을 거라고 하시더라구요. 뭔가 시원치 않은 느낌은 있었지만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돌아가서 찾아오기는 무리였을 것 같네요. 하지만 아직도 그 민박집 이름이 들꽃 민박이었다는 건 잊을 수가 없네요… 혹시 기회가 되어서 다시 가면 찾아올까 하는 생각에… 하여튼 이 날은 오르막을 오를 때 굉장히 천천히 올랐었는데 그렇게 올라가니 전혀 힘들지 않더라구요. 음.. 오르막도 힘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비구름을 피해 허겁지겁 숙소로 가서 점심을 숙소에서 먹고 편히 쉬다가 9학년 부모님들이 쏘신 아이스크림과 치킨을 흡입했답니다. 잘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부터 지금까지 감기를 달고 있었네요. ㅜㅜ 다행인 건 증상이 악화되지를 않았다는 것! 근데 집에 와서도 나아질 기미를 안보이네요!?
여덟째 날
드디어 저희가 두 번째 봉우리를 맞이하는 군요. 그 것도 자매도 남매도 아닌 형제봉이라네요. (형제들이 재일 많이 싸우지 않나??) 하… 살짝 쫄긴 했지만 어차피 가야한다는 것. 그런 와중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비까지 쏟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갈만 했는데 바지가 다 젖고 나니 체온이 떨어지고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바람이 불고 길은 잃어버렸고 정말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날이었어요. 그래도 서로 뭉쳐서 끌어안고 있었더니 조금은 따뜻해지더라구요. 마침내 소나무를 만나고 날이 개기 시작했을 때 그 안도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래도 나중에 들어보니 제가 한 고생은 고생도 아니더라구요. 다들 길 잃고 추위와 두려움에 떨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일을 겪고 나서는 처지는 사람 없이 말을 하지 않고 항상 대열을 유지하며 가기로 정했답니다. 그래도 민박에 무사히 도착하고 나니 주인 안주머니가 세탁기도 돌려주시고 참게 메기 매운탕으로 특별 외식까지… 그래도 이 날은 다들 너무 많은 고생을 했어요~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쓰는데울컥하기도 하고 정말 쓸 말이 많아지더라구요. 겨우 반을 넘긴 와중에 조급해지던 제 마음을 달래느라 애썼답니다.
아홉째 날
드디어 하동에서 구례군으로 넘어갑니다. 하동은 녹차가 참 유명하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전 날 차 밭을 꽤 봤는데 너무 춥고 정신이 없어서 아무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네요. 원래는 제가 녹차 덕후거든요. 사실 이 날도 날씨가 우중충 했었어요. 그래도 비가 안온다는 사실에 다같이 어찌나 감사해했던지. 해가 비칠 때 선크림 바르기 귀찮다고 부리는 투정도 확실히 줄어가더라구요. 항상 지나고 나서야지만 깨닫고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군요. 이 날의 목적지는 용궁가든 민박이었는데 그 곳에선 반가운 건우와 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파주에서 내려온 새로운 배낭을 받았지요. 다음날 오르막 내내 적응기간을 거쳐야 했지만 처음 몇 일을 생각하면 이 것도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답니다. 결국에는 적응에 성공을 해서 남은 기간 동안 잘 걸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건우네 부모님께서 2인 1판의 양에 달하는 피자를 주셨답니다. 다들 2연타로 치킨을 먹고 피자를 꿈에 그리고 있었는데… 꿈은 ㅇ…이루어진다!?
열째 날
대화 없이 걸어야 했던 길에서는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돌아가면 하고 싶은 많은 일들과 먹고 싶은 많은 음식들도 생각하고 현재의 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막상 이러저러한 생각을 해보니 저의 관심사가 너무 한정적이고 변화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여름방학에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며 도전해볼까하는 무궁무진한 생각들을 하며 걸었답니다. 중간에 화엄사(?) 부근에서 였던가 지리산 흑돼지를 파는 집이 어찌나 많던지 다들 냄새 속에서 정신줄을 잡으려 허우적거렸답니다. 게스트하우스는 여학생들이 다같이 두근두근 기대했던 이미지와는 달랐지만 따뜻하고 두터운 이불이 있던 숙소였습니다. 감기환자에게 안성맞춤! 그리고 이 날은 임시 학생회를 열어서 말을 하면서도 다같이 처지지 않고 가는 법에 대해 논의하고 대안을 찾아냈지요. 각 조에 다양한 속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배치해서 느린 친구를 빠른 친구가 밀어주며 대열 사이에 빈틈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답니다. 조장은 9학년 3인방이 맡았답니다. (강, 영빈, 영보) 이 해결책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약간의 기대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설렘을 안고 하루를 마무리 했답니다.
열 한 번째 날
말을 하는 것이 허락되긴 했지만 다들 습관이 들어서인지 조용하게 걸음을 옮겼답니다. 점차 말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처지는 사람은 없었어요. 다들 열심히 논의하고 투표해서 결정되었던 것이어서 그런지 다들 각자에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준 것 같아서 참 고맙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하루였답니다. 이 날은 점심 때 수빈이가 가족여행을 떠났답니다. 며칠 안남았는데 떠나니 아쉬울 것 같더라구요. 수빈이네 부모님이 빼빼로와 빵, 아이스크림 등 엄청난 간식들을 주시고 가셔서 다들 입이 귀에 걸렸었더라지요. 열흘만에 빵을 먹은 여학생들의 표정은 참… 혹시 우리 다 탄수화물 중독인 것 아냐?? 이 날은 가는 내내 후미에 서야해서 굉장한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던 것 같네요. 어디서 가든 이제는 속도도 비슷하고 뒤에는 푸지와 성배도 있는데도 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건지… 그래도 도착할 때쯤에는 후미에 서는 일도 어느 정도 적응했답니다. 이 날은 숙소에서 재밌는 사진을 많이 찍어서 좀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답니다.
열두 번째 날
찜질방에서의 하루 밤은 참 화끈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놔서인지 목은 훅 가버렸지만요. 이 날은 사실 아침에 길을 돔 돌아서 갔는데 별 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둘레길을 걸으면서 돌아간다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지요. 열두 번째 날이 되고 나서야 비로서 적응이란 걸 했나 봅니다. 아침에 밤재를 넘어서 전라북도에 입성하기도 했었네요. 모텔까지 찾아가는 길은 쉽지만은 않았지만 나중에 보니 ‘혹시 저기 아냐?’ 했던 곳이 정말 저희 숙소더라구요. 다들 이제는 척하면 척인가 봅니다.
열세 번째 날
마의 실상사 코스.. 27km에 가까운 거리를 빠짐없이 모두 걸었답니다. 평지가 많긴 했지만 정말 다리에 모터를 단 수준이었어요. 오전에만 무려 17km를 걸었으니 말이죠. 그래도 이 날 많은 부모님들과 더불어 저희 부모님도 오셔서 기분이 참 좋았더랍니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저녁 때나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뒤엉키기더라구요. 충분히 적응하고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 얼굴만 보면 초등학생 때로 강제 리셋되는 것 같아요. 그냥 눈물이 왈칵하고 나와버리더라구요. 힘들어서 잘 몰랐지만 부모님이 참 많이 그립기는 했나봅니다.
열 네 번째 날
드디어 여행에 막바지를 달리게 되는 군요. 이날 약 5km를 빼먹어서 인지 생각보다 걸을만 했답니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좀 힘들어 하시더라구요~ 숙소도 마을 입구 가까이 위치해 있었구요. 복층 구조라 여학생들이 한껏 들뜨기도 했답니다. 오전에 너무 쉬엄 쉬엄가서 오후에 긴장이 확 되었었는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좀 오바했던 것 같아요~ 숙소에서 족구도하고 저녁에는 규원이 아버님이 맛있는 돼지 갈비를 해주셨답니다! 마지막 마무리 모임에서는 모두의 소감을 들어보기도 했답니다. 그 때 이러저러한 제 생각들을 말하긴 했지만 사실 아직은 이번 2주간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오래 고민을 해 보았지만 아직도 참 어렵네요~
열 다섯 번째 날
드디어 집에 가는 날 아침이 밝았답니다! 마지막 8km밖에 안 남았는데.. 사실 출발하기가 겁나더라구요~;; 그 전에 출발할 때 이런 마음이 든 적은 없었는데;;; 혹시라도 막판 8km 죽음의 8km 일까봐;;; 그래도 출발하며 걷다보니 풍경도 참 예쁘고 아무도 재라고 눈치 채지 못한 재를 넘었답니다. 마지막으로 사진도 좀 찍고요. 어느덧 숙소 앞에 있던 추모 공원 표지판이 보이고 저희의 첫 번째 숙소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답니다. 그 때의 그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약간 뭉클하고 울컥하면서 뿌듯하고 믿기진 않지만 홀가분하고 붕 떠오르는 기분!?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추모공원을 살펴보며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답니다. 산청, 함양 사건은 한 번도 접해 본적이 없었는데 사건의 실태와 이와 비슷한 사건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이었답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단체사진을 찍었을 무렵 처음 탔던 버스와 동일한 색상의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였고 다들 너무 신났답니다! 모두 무사히 대화역에 도착해 파이팅을 외치고 부모님의 따스한 품으로 돌아갔답니다~
* 사진 속 학생은 글쓴이가 아닙니다^^;
마무리하며..
우선 2주 동안 모두, 특히 선생님들~ 너무 고생하고 수고하셨습니다~. 사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직은 이 경험들을 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한 번 제가 제 스스로를 뛰어넘었다는 것 같아요. 둘레길을 걷다 만난 어떤 분은 올해로 4년이란 시간을 들여 드디어 끝을 맺으신다던데 충분한 시간과 힘이 되어주는 서로가 주어졌던 것도 큰 복이었던 것 같고요. 길을 걷는 내내 많은 사람들로부터 따스한 마음을 느낄수 있어서 참 좋았더랍니다. 내년에 새로운 길을 걸을 때는 여유를 가지고 따스한 마음을 줄 수 있다면 더 좋겠네요.
p.s. 쓰다보니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하루하루 대강 무엇을 했는지 궁굼해하실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설명해 드리고 싶기도 해서요~ 너무 길어서 개인적으로는 뒷부분만 읽는 걸 강력추천 해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곧 사진도 올라갑니다!
2014.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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