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THe hunt'라는 미국영화가 새로 나왔다고 하면서 대략의 줄거리와 중요 장면들을 보여준다.

 

들어보니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유치원 교사를 하는 남자 주인공이 살고 있었는지 이사를 왔는지 헀던 것 같다. 그리고 같은 마을에 친구 부부가 살고 있고, 이 부부의 아이도 유치원에 다닌다. 친구 부부는 아이는 개의치 않고 부부 싸움을 자주 하는 편인 것 같고, 이 때문에 여자아이는 외롭고 힘들다. 남자 주인공인 선생님은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고, 아이는 갈수록 선생님에게 푹 빠진다. 결국 유치원생인 작은 여자아이는 선생님에게 적극적인 대시를 하는데, 뒤늦게 아이의 감정을 알아차린 선생님은 아이를 제지하고 아이의 감정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준다.

 

선생님에게 거부 당한 아이는 화가 난 나머지 선생님을 헤꼬지하여 복수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이는 대시를 한 쪽이 자기가 아니라 선생님인 듯이 부모에게 고자질한다. 사실 처음에는 욱 하는 마음에 그냥 한 번 거짓말을 해본 듯하다. 하지만 사건은 점점 확대된다. 아이는 지금 와서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고 되돌릴 수는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평소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부모는 이번이 평소의 죄책감을 만회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 사건을 확대시키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친구이자 교사가 와서 그렇지 않다고 해명을 하지만 아이의 아빠는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철썩 같은 믿음으로 교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게다가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닌, 아동 성추행이 아닌가!! 결국 마을 사람들 전체가 마녀사냥을 하듯이 교사를 몰아세운다. 그렇게 어린 아이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기에, 교사에게 가해지는 온갖 폭력은 기정사실화된 범죄에 대한 단죄로 합리화된다.

 

아마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도입부나 전반부일 것이다.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비극으로 끝나는지 결국에는 진실이 밝혀지는지는 영화를 직접 봐야 알겠지만,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영화인 건 분명한 것 같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미국 드라마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성범죄 수사대의 활동을 다룬 SVU라는 미국 드라마였는데, 민간에서 운영하는 소년원 같은 시설에 있는 아이가 자신들을 돌봐주던 원장(교사?) 부부를 아동 학대와 아동 살해로 수사기관에 고발한다. 수사관들은 아이의 말을 철썩같이 믿는다. 원장 부부는 아동 학대가 아닌 심리 치료의 과정이었고, 살해가 아닌 사고사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수사관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재판이 열리고, 심각한 '문제아'의 제지 과정에는 일정 정도의 강제가 행사될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검사와 수사관들은 이를 절대 믿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는 항상 보호해줘야 하는 약자이다'라는 수사관의 선입견이 깨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애정에 굶주린 고발자 아이가 수사관의 동정심을 이용하여, 재판 과정 동안에 수사관의 자취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수사관이 아이더러 재판이 끝나면 다른 위탁 가정이나 시설에 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아이는 수사관더러 자신을 입양해달라고 했지만, 수사관이 거절하자 그날 밤 수사관의 집에 불을 놓는다. 애정에 굶주린 아이의 갈증이 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확인한 수사관은 더 이상 원장 부부를 아동학대로 고발하지 못한다는 줄거리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다. 우리 어른들이 저지른 죄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사건에서도 가해자 부모들이 자기 아이의 거짓말('그냥 장난이었다', '내가 공격한 것은 피해자 아이가 먼저 잘못했기 때문이다' 등등)에 속아 넘어가는 이유도 이것이다. 위 영화에서도 여자아이의 부모는 엄마아빠의 부부싸움이 아이의 정서를 비뚤어지게 만들고 황폐화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부모는 더욱더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환상에 매달린다.

 

그런데 정말로 부모들은 평소에도 '아이들은 본래 순진하므로 아이의 말은 100% 진실이다', 혹은 '아이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을까? 내가 알기로는 그럴 리가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기적이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불사하기 때문이다. 거짓말 하는 아이와 하지 않는 아이의 차이는 부모 등 가까운 어른이 거짓말 하는 것을 본 아이와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거짓말 하는 방법을 모르는 차이일 뿐이다. (하기야 요즘처럼 대중 매체가 발달한 상황에서는 아이는 가까운 어른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거짓말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야단을 쳤다거나 아이에게서 거짓말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는가 아닌가는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왜 어른들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마도 부모는 아이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기에, 아이의 어두운 측면을 들여다보기 싫어서일 것이고, 수사관처럼 아이들의 세계를 잘 모르는 나머지 어른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다른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즉 아이는 항상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므로 악일 수 없고, 그런 약자인 아이가 용기를 내어 고발하는 상대라면 당연히 그가 악이라는 선입견 말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라. 지금 나는 아이가 작은 악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사실 어른과 비교하면 아이가 악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는 훨씬 적다. 게다가 설사 아이가 거짓말이나 나쁜 짓을 하더라도 일정 연령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그 책임을 온전히 묻기가 힘들다. 정말 뭘 모르고 한 짓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근대사회에서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그 부모에게 책임을 묻곤 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아이에게는 죄 없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고, 이는 아이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말하는 것이니까 사실일 거야', '어린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어', 혹은 '다른 아이가 다 그렇다 해도 내 아이만은 절대 그렇지 않아' 같은 어리석은 환상을 깨라. 부모나 어른들이 이런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어른의 이 환상을 악용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거짓말 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대안학교 부모들 중에도 자기 아이의 말만 듣고 학교에 와서 교사에게 따지거나 교사나 다른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뒷 말을 하고 다니는 경우들이 있다. 자기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고 그래서 환상을 가진 부모들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다. 혹은 평소에 부모로서 자신이 아이에게 잘 대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일수록 이런 경우에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확실하게 아이 편을 들어준다. 이런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쉽게 남 탓을 하는 심리 상태 자체가 문제라는 데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건 남 탓 하는 심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경우이다

 

예를 들어 -- 오래 전이지만 -- 예전에는 아이가 선생의 부당함을 고발해도 부모가 그 말을 받아주지 않았다. 교사가 그런 행동을 한 데는 아이가 보는 관점과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 성적 올리는 데 더 효과적인 사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부모는 교사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런 판에 아이가 자기가 공부를 못하는 건 교사가 실력이 없어서라고 핑계를 대면, 부모는 아이의 그 말을 믿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부모가 교사를 만났는데 교사가 아이가 수업 시간에 딴 짓을 하거나 잠을 자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해주면, 부모는 집에 돌아와 아이를 야단친다. 그러면 아이는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잠을 잔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단순히 교사가 실력이 없다는 정도를 넘어서는 거짓말을 급조한다. 다시 그럴 듯해보이는 아이의 거짓말에 부모는 속아 넘어간다. 부모는 더욱더 교사를 우습게 여기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아이도 덩달아 더 이상 선생님을 신뢰하지도 학교의 권위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 이것이 공교육이 무너진 과정이다.

 

그리고 덩달아 아이들의 거짓말도 늘었다. 부모가 교사를 신뢰할 때 아이는 거짓말을 할 여지가 없었다. 사실을 말해도 믿어줄까 말까 한데 거짓말을 하는 데 믿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가 아이가 거짓말을 하도록 조장하고, 이 아이의 거짓말을 가지고 부모는 교사를 비난 내지 협박하기까지 한다. 다른 부모들에게는 '아이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하면 그만이다. 왜냐하면 나머지 다수의 부모들도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가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해명해도 부모들은 그래도 아이가 직접 그렇게 말했다고 하니, 교사의 해명에 반신반의한다. 그러니 부모가 교권을 존중하지 않는 결과로 아이는 거짓말쟁이가 되거나 이래저래 아이만 힘들어진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힘들어하는 아이를 놓고 자신의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학교와 교사만 비난한다.

 

어쨌든 지난 7년 간의 현장 경험으로 나는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널리 퍼진 '상식'은 잘못된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부모의 비교육적 태도에 대한 면죄부로 이용될 뿐임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환상이 대단히 강력하여 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현장에서 매일 환상이 아닌 사실을 보고 있는 교사들도 이 환상에 발목이 잡히곤 할 정도로 말이다.

 

교사들도 대개의 경우 아이들은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명확한 반증이 나올 때까지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해도 거짓말인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두 아이의 주장이 서로 모순되거나, 객관적인 물증이 확실할 때라야 뒤늦게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아이의 거짓말을 확인했다 해도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덮어주고, 부모에게도 그 사실을 전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 부모의 환상을 깨는 냉혹한 역할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보호하고 보살펴줘야 하는 교사가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할 수는 없다는 온정주의에 교사도 강력히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온정주의가 과연 잘 하는 짓일까? 예를 들어 아이가 거짓말을 하거나 돈을 훔치거나 하다가 엄마에게 들켰다고 해보자.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아빠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럴 때 엄마들은 아이가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부탁했다는 것, 다시 말해 아빠보다는 엄마인 자신을 더 믿고 의지한다는 것에 약간의 감정적 만족을 느끼면서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너무 과하게 아이를 야단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부분의 교사들도 엄마처럼 행동한다. 혹은 교사쪽에서 미리 알아서 '다른 아이들이나 너희 부모님한테는 알리지 않을 테니 두번 다시 그러지 마라'고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to be continued)

 


2013. 3. 27. 금안당


* [대안 시선]에 업로드되는 글은 파주자유학교 전체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날짜

2013. 3. 27.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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