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의 위인전과 탈북 시인이 바라는 역사 교과서

- 멀고느린구름


탈북 시인이 읽은 한국사 교과서(뉴데일리)

* 제목을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탈북 시인 장진성이 읽은 한국사 교과서는 어떤 교과서?


요즘 SNS 상에서 '장진성'이라는 이름을 자주 보게 된다. 이 분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노동당 작가로 일했던 북한 인텔리 출신이다. 2004년에 탈북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친애하는 지도자에게(Dear Reader)>라는 북한 생활 수기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스타덤에 올랐고,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라는 시집을 통해서 영국의 옥서퍼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보수 성향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새터민 중에서도 엄격히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주장을 펼치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국정교과서 정국에 들어 이분이 2011년에 올린 글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이 글은 위에 링크한 기사를 통해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5월 30일에 쓰여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장진성 작가의 수기의 요점은 이렇다. 


대한민국의 한국사 교과서는 '민중봉기사'이고, '계급투쟁사'다. 

쓰여져야 하지만 쓰여지지 않은 것들이 네 가지 있다. 

한국사 속에 본받고 싶은 우상이 없고, 전쟁영웅이 없으며, 성공한 기업 리더 이야기가 없다.

무엇보다 남한의 독재자에 대한 증오는 가득하나, 

북한의 독재자에 대한 증오는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온정적 시선이 있다. 


이상이 탈북 인텔리의 눈으로 읽은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이다. 관점에 따라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자세한 논의에 앞서 먼저 장진성 작가가 과연 어떤 한국사 교과서를 읽고 저런 판단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은 국정교과서 체제로 유지되어 오던 역사 교육을 검정 체제로 전면(기존에는 한국 근-현대사 부분만 별도로 검정체제로 관리) 전환시킨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2009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기존의 국정 '국사' 교과서가 전면 철폐되고, '한국사'라는 이름의 검정 교과서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새로운 '한국사' 교과서는 2011년 고1부터 적용이 되었다. 따라서 장진성 작가가 읽은 것은 이 시기에 발행된 6종의 새로운 검정 교과서일 것이다. (* 이 과정을 보수의 시각으로 잘 정리하고 있는 기사 링크)



문제는 민중사관이냐, 영웅사관이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내 역사학자의 90%가 좌편향되었다고 말한다. 극단적으로 오른쪽에 있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자신보다 조금만 왼쪽에 있어도 좌편향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그리 이해가 불가능한 말은 아니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을 조금 더 객관화시켜 학술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국사학계의 보편적인 사관(史觀)이 '민중사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사관을 간단히 설명하며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보편적 민중, 즉 주권을 가진 국민에게 있다는 역사관이다. 이 역사관에 의거해 역사를 살피게 되면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들은 민중이 단결하여 일으킨 사건들이 된다. 즉, 의병 - 동학농민운동 - 3.1만세운동 - 항일독립운동 - 민주화운동 - 노동운동 등이 주요한 역사적 사건이 되는 것이다. 민중사관이 힘이 실리는 부분은 근현대사다. 중세, 고대사는 민중의 활동을 알 수 있는 사료가 극히 부족한 탓이다. 


민중사관에 반대되는 사관은 '영웅사관'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를 다수의 민중이 아닌 특수한 개인, 엘리트 및 영웅으로 보는 역사관이다. <조선왕조실록> 등을 떠올리면 영웅사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역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을 '왕'으로 전제하고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다. 그 기술의 논조가 아무리 객관적이라 하더라도 왕에 의해 역사가 좌우된다는 전제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이 영웅사관에 입각해 기술하면 한국사는 다음과 같이 재편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신 - 갑신정변 - 갑오개혁 - 개항 - 주요 독립운동가들 - 김구와 이승만 - 김종오, 백선엽 등의 6.25 전쟁 영웅 - 다시 이승만 - 윤보선 -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 김우중 - 정주영 - 이병철 등등. 


이렇게 보면 장진성 작가의 비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한국사에서 익숙한 '영웅사관'을 기대했으나 '민중사관'밖에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북에서 나고 자란 장진성 작가에게 역사는 당연히 '영웅사관'으로 서술해야 마땅한 것이었으리라. 북한의 역사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3대 세습과 독재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김씨 일가 영웅사관으로 쓰여져 있다. 북한의 역사 기술은 조선왕조실록보다 오히려 퇴보한 영웅사관인 것이다.(조선왕조실록은 그래도 최소한 영웅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기술을 하고 있다.) 그런 사관에 익숙한 이에게 '민중사관'을 전제로 쓰여진 한국사가 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사관 외에도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북한 사회에서 역사란 '세뇌'의 도구이다. 여기서 세뇌란 요즘 말로 하면 '정신승리'다. 북한의 현실 자체가 별로 훌륭하지 못하니 끝없이 역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자긍심과 충성을 강조하여, 여러분이 소속된 국가가 매우 훌륭한 국가라고 믿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역사란 '반성'의 도구이다. 이러한 생각은 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로 대변된다. 우리가 역사 교육을 하는 이유는 못마땅한 나라를 그럴싸하게 치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역사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에 스스럼이 없다. 위정자들의 안일함으로 나라가 병탄된 일, 식민지배라는 치욕, 6.25 전쟁의 비극, 독재, 매카시즘, 인권 유린, 노동 탄압 등 역사에 실재했던 나라의 부끄러움들을 '일부러' 다시 끄집어내어 미래 세대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왜냐? 단순하다. 아이들에게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우왕좌왕하다가 나라를 뺏기지 말고,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일 하지 말고, 독재하지 말고, 인권 유린하지 말고, 노동 탄압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칭찬과 반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교육관의 차이다. 칭찬하는 것이 더 교육효과가 좋으냐, 꾸짖어서 반성하고 고치도록 하는 게 옳으냐 하는 오래된 두 관점이다. 지나치게 칭찬하면 자만에 빠지기 쉽고, 지나치게 꾸짖으면 위축된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력히 주장하는 분들은 대다수가 '영웅사관'에 입각한 교과서로 수정을 해야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는 심증이 든다. 문제는 그분들이 주장하는 영웅이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인데, 자꾸 사실을 왜곡해서 영웅으로 만들려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관을 지닌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찬성표를 보낼 수 있으나, 역사를 왜곡하려 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가 없는 일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실패한 것은 보수 교과서여서가 아니라, 비전문가들이 역사를 왜곡하여 서술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었다. 



이런 분석도 좋겠지만, 왜 보수의 역사서가 시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는지도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자유주의자의 관점에서 나는 위 장진성 작가가 주장한 것과 같이, 전쟁영웅과 성공한 기업인들, 본받을 만한 위인들이 등장하는 '영웅사관'의 교과서가 나온다면 흥미롭게 읽고 싶어질 것 같다. 다만,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는 보수 측의 분들이 너무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항상 시장경제의 원리를 앞서서 주장하고,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분들이 어째서 획일적인 교육을 해야한다는 주장 쪽에 손을 들고 있는 것일까? 더군다나 지금 시기는 보수 정권이 10년째 집권하고 있는 시기인데도 말이다. 이런 시기에도 대중들의 눈길을 확 잡아끌 만한 매력적인 영웅사관의 역사 교과서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정말 실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이 문제라고 주장해도 마찬가지다. 소위 그 좌파 역사학자라는 분들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40년 독재 역사를 견디고 지금의 토대를 일군 것 아닌가. 그 40년 동안 역사 교육은 집권하고 있는 대통령들을 북한처럼 찬양하는 영웅사관의 국정교과서로 이루어졌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보수 학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인데 왜 못하는가? 공연히 힘으로 누르지 말고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당당히 경쟁하시라.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기꺼이 사서 읽어드리겠다.  


검정 체제 하에서 8종의 한국사 교과서가 발간이 되었다. 학문적으로는 굉장히 풍성하고 고무적인 환경이다. 오히려 각 교과서마다 다양한 관점이 허용이 된다면, 이 책에서 의문을 가지는 점을 다른 책에서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다양한 관점을 균형 있게 접하는 것이 '민중사관' 아니면 '영웅사관' 이라는 식으로 편향되게 배우는 것보다 훨씬 영양가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보수 쪽 분들이 부작용만 큰 국정화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매력적인 보수 한국사 교과서 제작에 온 힘을 기울여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마치는 글 - 그 옛날의 위인전



초등학생 시절, 나는 '에디슨'의 위인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발명해내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는 그의 열정이 눈부셨다. 그로 인해 에디슨처럼 위대한 발명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오래 가슴에 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발명반 서클에 들었고, <발명가가 되기 위해서>라는 책도 탐독했다. '위인전'은 대표적인 '영웅사관'에 입각한 역사서다. 위인전에는 위인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킬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에디슨이 다른 발명가나 부하 직원의 발명물을 훔치고, 표절하는 데 탁월했으며, 그가 전구를 발명한 계기가 기업가로서 노동자들에게 밤에도 일을 시키기 위해서 였다는 이면의 사실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에디슨이 이른바 '위대한 발명왕'이라는 것도 사실이고, 좋지 않은 인격을 지닌 기업가라는 것도 사실이다. 한 쪽의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다른 쪽의 사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가 재임시절 추진한 여러 사업들이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 역시 어느 한 쪽의 사실이 다른 사실을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역사는 당연히 해석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자료,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접근할 때에만 역사는 그 진실을 온전히 드러낸다. 장진성 작가가 바라는 것과 같은 '영웅사관'에 입각한 역사서가 있어도 좋겠다. 다만, 그것만 있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독점하려하는 행위는 온전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다는 고백과 같다. 북한, 방글라데시, 베트남, 옛 동유럽의 사회주의권 국가들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조선 총독부가 역사를 독점하려 했다.(* 참고 기사)


나는 보수주의자들이 자신들만의 사관으로 역사책을 새롭게 써서 시장에 내놓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다. 사실에 입각한 역사서라면 국민들이 널리 읽고 판단에 참고하면 더 좋을 것라고 여긴다. 헌데, 그분들은 왜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8종의 교과서를 두려워할까. 국민 다수를 판단력이 없는 우민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분들 스스로 자문해보았으면 한다. 


2015. 10. 22. 


뱀발 : 쓰다 보니 대한민국 독재자에 대한 비판은 많은데, 어째서 북한 독재자에 대한 비판은 없느냐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깜박하고 답을 못했다. 간단히 답하면 한국의 역사교과서에서 사실상 타국인 북한의 역사 문제를 밀도 있게 거론하는 게 타당한가 하는 질문에 먼저 답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즉, 북한의 역사가 '한국사'에 포섭되느냐 하는 문제다. 그런데 통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역사를 한국사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3대 세습과 독재 문제도 사실상 세계사의 범주에서 스탈린이나 피델 카스트로의 독재를 서술하는 정도의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현 한국사 교과서가 적어도 그 정도의 서술은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성에 차지 않는다면 차라리 통일시대에 대비해 '북한사'라는 것을 별도로 편찬하여 북한의 현실과 역사를 객관적으로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 탈북 지식인들과 국내 북한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하여 밀도 있는 별도의 사서를 만들어낸다면 '한국사'의 일부로 간헐적으로 북한을 다루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이 또한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위험이 다분히 있을 것 같지만 말이다. 아니, "우리 아이들이 북한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라는 플래카드를 먼저 보게 되려나.



날짜

2015. 10. 2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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