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거친 감정 받아주기  

- 한아름 



명상하다가 알게 된 지인이 있다. 명상할 때 참 많이 우는 지인은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엄마다.


명상이 끝나고 자신의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찧고 빻는 끄달림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이는 어렵게 자기 아들 이야기를 하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엄마 말이라면 참 잘 들어주고 다정한 아이였는데 중학생이 되더니 세상에서 엄마처럼 답답하고 짜증나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화를 내고 자기 방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말이라도 붙여볼라치면

 

"언제 내가 뭘 힘들어하는지 관심이나 있었어? 나가. 자기 말만 할꺼면 나가라고하며 쏘아붙인다는 것이다.

 

너무 충격을 받은 엄마는 아이가 갑자기 변한 것에 놀라고 당황스럽고, 섭섭하고 화나고, 이내 배신감까지 들었다고 한다


혹시 아이에게 엄마가 모르는 사정이 있나 싶어 학교 담임선생님께 아이의 교우관계나 학교생활에 대해 상담했는데 별 특별한 사항이 없으며 늘 그렇게 평소처럼 잘 지내며 성적도 꽤 우수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선생님의 말도 못내 미심쩍어 가까이 지내는 아이의 친구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나쁜 친구를 사귄다거나 왕따를 당한다거나 하는 특이사항도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다시 아이에게 말을 붙여보면 귀찮다는 반응을 보이고그나마 대화를 해도 건성건성 말하는 아이의 태도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불안하고,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많아졌단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녀석이 밉기도 해서 자기 인생, 자기더러 살라고 내버려두고 싶은 심정까지 들더란다. 아들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를 써봐도 엄마 자신이 아이에게 얼마나 헌신적으로 애정을 주고 살뜰히 보살폈는데 그런 엄마에게 버릇없게, 과민하게 말하고 행동하니 가슴만 쿵쾅거리고 이해도 되지 않으며 도리어 아들 눈치를 살피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지인의 남편,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남편, 아들과는 안면이 있어 식사 자리는 어색하지 않았다. 필자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여보았다학교생활은 어떤지, 요즘 인기 있는 게임은 뭔지, 공부는 힘들지 않은지, 좋아하는 이성은 없는지 이야기를 묻고 필자의 골때리는(?) 무용담과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다가 아이가 웃었다. 그리고는 게임 이야기에서 아이가 반응을 하였.

 

자기가 말하는 게임을 아는지, 해봤는지, 필자가 몸 담고 있는 학교의 아이들은 어떤지, 그런 아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묻는 아이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하였다. 그러면서 말문이 터진 아이는 어떻게 그렇게 나이가 많은데도 게임을 하냐며 필자에게 타박도 하며 시종일관 즐겁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필자의 귀에 대고 


"우리 엄마가 시켰죠? 저랑 이야기 하라고. 뭐 전 상관없어요. 별것도 아닌데 엄마 혼자 걱정하는 거니까요. 엄마는 사춘기도 없었나봐요. 이모는 애들이랑도 이렇게 이야기해? 그럼 저... 전화해도 돼요?”


라고 속삭였다.

 

그런 자리가 있은 후, 아이는 여러 번 필자에게 전화를 해왔고 방학만 되면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청한다아이는 엄마의 말처럼 다정한 아이였고 호기심이 많았다. 그리고 초등 때와는 공부 내용, 공부 양, 부담되는 시험과 평가가 너무 많아 자신도 불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자신도 누구보다 잘해내고 싶고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과외공부를 시키는 엄마에게 불만이 많았는데 그런 엄마가 필자를 만난 이후로 과외도 줄여줬고 하고 싶었던 드럼도 배우게 되었고하루에 한 시간만 게임하기로 한 약속도 잘 지키고 있다고 전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아이의 엄마도 아이가 자기보다 말이 통하는 이모를 갖게 되어 신기하기도 하고, 질투도 나고 괘씸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는 말을 전했다글을 쓰다보니 이거 웬지 필자의 자랑을 늘어놓는 것만 같아 좀 겸연쩍기도 한데... 뭐 차치하고.


지인이 경험했던 그 어려움들은 사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흔히 겪게 되는 심정이다엄마를 부정하며 거칠게 토해내는 아이의 말을 액면 그대로 듣게 되면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키워온 엄마로서는 당연히 충격이고 배신감이 들것이다. 그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 그렇다면 도대체 아이는 왜 그럴까.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로 이 대목에서 밑줄 쫘악


사춘기 자녀의 발달상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사춘기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 들여다보자.

 

사춘기 시기는 신체 생리적으로 가장 왕성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신체 생리적 에너지가 왕성한 기운임에도 가장 억압받는 시기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자기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잘하며, 여러 경험 속에서 어떤 것에 불안을 느끼고 어떤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지 알아가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에 아주 예민하다.


그리고 누구로부터 간섭받기 싫어하고 독자적인 자기 의지대로 행동해 보고 싶은 욕구가 아주 강하다입는 옷의 스타일링부터 사사건건 고분고분하던 초등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이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의지가 아직 부모에겐 낯설고 어른에게는 쉽게 허용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에너지와 주변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에너지그 팽팽하고 불안정한 대립. 그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또한 정서조절과 표현은 아직 미숙해서 작은 일에도 감정이 예민해지고 작은 말에도 아주 과민하게 화를 내고 사소한 말에도 자기 영역을 침범한 것처럼 크게 반발한다. 그리고 지인의 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 못할까 봐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고 성적에 대해 초탈한 듯 보이는 아이처럼 위장할 순 있어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처한 입시 스트레스에 대한 압박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어떻게 보면 엄마에 대한 격한 감정 표출은 앞서 말한 사춘기 특성상 갖게 되는 불안함과 자기 스트레스를

가장 만만한 엄마에게 배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힘들면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자기 부담을 줄이는 것으로 자기감정을 정화한다이러한 경향성은 사실 무척 자연스럽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누구나 자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닥칠 땐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두려움 없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방어기제를 없앤다거나 책임 있는 어른으로 키운다는 명분하에 누구 핑계도 대지 말고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정신은 건강함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특히 왕성한 성장기에 있는 사춘기 자녀에게는 자기의 불안정한 감정을 쏟아내면서 다시 자기정화를 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엄마인 것이다.

 

이제 이 글의 결말을 짓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선 엄마가 자녀의 거친 말을 액면 그대로 듣고 낙담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자녀의 행동에 대해 공격하지 말자그러면 아이는 자기정화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으이구~ 이눔아. 니가 때가 되었구나. 그래, 뭐가 그리 북닥이냐~~”하며 들어주자괴물처럼 으르렁거리면 겁먹지 말고 그냥 받아주면 된다따뜻한 품으로 품어주면 아이는 오래 으르렁거리지 않는다. 으르렁 대는 것도 오래 하면 힘드니까. 그걸 아이들도 잘 안다.

 

아직은 미숙한 자기를 털어 버리고 건강한 자기 인격으로 설 수 있도록 여유 있는 마음으로 그 생명력 넘치는 거친 감정을 받아주자


그것이 사춘기를 혹독하게 치르는 아이들에겐 꼭 필요하니까.

 

날짜

2014. 2. 7. 07:59

최근 게시글

최근 댓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