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의 편파성

- 금안당 

 


권력을 쥔 쪽은 언제나 스스로를 정의라고 자처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공정한 정의였던 경우는 역사상 많지 않다.

 

 

지난 8월과 9월, 미국에서는 비무장상태의 흑인에게 백인 경찰이 총을 난사하여 사망한 두 번의 사건과 관련하여 혹인 시위가 벌어졌고, 지금 홍콩에서는 10만이 넘는 시위대가 민주적 직접선거를 요구하며, 중국 및 홍콩 정부와 맞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홍콩 행정장관은 시위대에게 발포를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가,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거부당했다고 한다. 보다시피 현대사회에서는 '공권력' 자체가 대단히 폭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공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행위라는 명분을 쓰기에 폭력적 공권력의 행사자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지난 6월 30일 우리나라 대검찰청은 7월 1일부터 폭력사건에 대한 벌금 구형량을 강화하는 '폭력사범 벌금기준 엄정화 방안'이란 걸 마련하고 구형량을 기존의 2배로 상향 조정하는 새로운 기준안을 제시하면서 다음날인 7월 1일부터 전격 시행될 것임을 선언했다. 벌금 액수만이 아니라 2인 이상에 의한 폭행의 경우는 피해자의 합의 여부에 관계 없이 기소하는 등 처벌 기준도 강화했다. 그리고 검찰은 우리 사회의 폭력 문화를 획기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라고 처벌 기준을 강화한 이유를 밝혔다.

 

이 상황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이 터졌다. 술을 마시고 일어난 우발적인 단순폭행에 불과한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검경은 '죄질이 악랄하다'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등의 희한한 근거를 대며, 무더기 영장을 신청하여 유가족들을 구속 수사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재판부는 영장심사에서 “증거자료와 피의자들의 주거, 생활환경 등에 비춰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면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그러자 이제 언론은 폭행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하면서 김현 의원을 폭행 교사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몰고 가고, 경찰은 김현 의원을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다.

 

또 이 와중에 안상수 창원시장은 진해 지역 출신의 창원시 의원으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았는데, 희안하게도 양복 위에 던져진 생 계란 한 알로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고, 자칫하면 실명까지 당할 뻔 했다고 하면서, 계란을 던진 의원을 고발했다고 한다. 그것도 시장 자신이 아니라 창원시청 공무원들의 명의로. 그리고 엊그제 뉴스를 보니, 진해 출신 시의원들을 포함하여 창원시 의원들 다수가 진해시를 창원시에서 분리해줄 것을 청원하는 청원서를 창원시에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창원시 의원의 행동은 개인의 일탈행동이라기보다는 진해 시민들의 울분을 대신한 행위의 하나였던 모양이다.

 

물론 유가족의 폭행이나 시의원의 계란 투척이나 잘한 행동은 아니다. 그리고 벌금 등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내가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는 상대방의 약간의 잘못을 빌미로 그 잘못을 확대 과장함으로써, 그런 행위가 일어난 원인을 해결하기는커녕, 문제의 애초의 원인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소위 피해자라고 나서는 자의 억지 주장과 그리고 대중의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언론이라는 요소가 있다.

 

사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남자들이 술 먹고 치고받고 싸우거나 여자들이 서로 욕을 하며 싸우는 일이 종종 있지만, 가해자측에서 사과를 하고 치료비를 보상하면 가해자를 용서해주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벌어진 우발적인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형사고발을 하고 소송까지 가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애들 싸움도 그렇지만, 싸움의 경위를 따져보면 피해자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가해자가 무조건 폭력을 휘두르는 '묻지마 폭력' 같은 건 일상적으로는 잘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싸움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측도 뭔가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이 잘못이 설사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래서 피해자도 가해자의 사과로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아, 나도 좀 과했던 게 있었구나'라고 스스로도 인정하게 된다.

 

따라서 폭력배들처럼 상시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의 다툼은 대단히 사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 설사 그 과정에서 위법적인 '폭력' 행위가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검찰은 사적인 영역에서의 다툼으로 끝날 수도 있는, 시민들의 프라이버시 영역에 속하는 사건들을 더 확실하게 공권력의 규제와 감독 하에 두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걸핏하면 고소 고발이 이루어지고, 층간 소음 같은 사소한 권리 침해에 대해서도 심하면 살인사건으로까지 발전하는 요즘 시류를 감안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민의 프라이버시 영역이 공권력에 의해 침해당할 수 있는 문제가 완전히 간과되고, 우리 사회의 공동체 정신의 바탕인, 소위 말하는 ‘인정’(人情)이란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내려진 판단이란 점에서 심히 유감스럽다. 왜냐하면 공권력까지 이런 잘못된 시류를 공식화하게 되면, 우리 사회에는 ‘각박함’과 블랙컨슈머 같은 ‘교활함’만이 난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상상해보면……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끔찍하다.

 

게다가 검찰의 폭력사범에 대한 이런 강경조치를 염두에 두더라도 세월호 유가족 폭행 사건의 경우는 뭔가 희한하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사건 자체가 구속 수사를 해야 할 만큼 중요 범죄 행위가 아닌, 전국적으로 하루에도 몇 십 건씩 터지는 단순폭행 사건이다. 거기다 대리기사는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안상수 시장이 양복 위로 터진 계란 하나 맞고 전치 2주의 진단이 나왔으니, 여기에 준해서 생각하면 전치 4주 진단은 그 상해 정도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검찰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6주 이상의 진단에 대해서만 구속수사를 해온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게다가 집단 폭행이라고 하지만 어디 뼈가 골절되었다는 이야기도 없는 것 같고, 유가족들도 대리기사에게 몇 번이나 공식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도 방문하고 세월호 성금도 냈다는 대리기사는 유가족들을 용서해줄 의사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일부 언론은 대리기사의 말만 믿고 증거도 없이 세월호 성금까지 낸 대리기사가 유가족들에게 폭행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느냐는 식으로 대리기사가 가해자를 용서해주지 않기를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재판부가 유가족들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하자 대리기사는 이번에는 또 김현 의원이 이 사건의 책임자라는 식의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리기사는 평소 싸움꾼들도 아닌 유가족들이 왜 그렇게 흥분해서 그에게 대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대리기사가 야당 국회의원에게 무례하게 대했다고 해서 유가족들이 그에게 몰매를 주는 행동까지 했을 거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여하튼 상황이 유가족과 김현 의원에게 불리한 건 분명한 것 같다. 왜냐하면 CCTV는 사진만 찍히지, 소리가 녹음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이 지난 6월 30일에 발표한 '폭력사범 벌금 기준 엄정화 방안'이란 것에 보면, 범행의 동기와 폭력의 정도에 따라 벌금 기준을 단계별로 적용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중 범행 동기를 보면 가해자의 범행 동기가 피해자에게 있는가, 아니면 가해자에게 있는가에 따라 구분한다고 되어 있다. 말하자면 가해자가 폭력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렇게 하게 된 동기가 피해자의 잘못으로 인한 경우는 가벼운 단계로, 피해자는 별 잘못이 없는데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폭력을 사용한 경우는 중한 단계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유가족 폭행 사건에 이 방침을 적용해보면,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어느 한쪽이 거짓을 말하고 우기면, 이 분류가 별로 소용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경찰이 유가족과 대리기사의 진술이 서로 어긋난다고 말하는 걸 보면, 둘 중 어느 한쪽은 거짓을 말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경찰과 검찰은 아직 범죄의 경중도 밝혀지지 않았고, 최대 적용이라고 해봤자 100, 200만원 벌금형 정도인 이 사건을 두고 유가족을 배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유가족을 구속하기까지 했다. 내 보기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조치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안상수 시장도 계란 세례가 정치적 '테러'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내 보기에 이는 한 번 잡은 '빌미'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식의 태도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시의원을 고발하거나 처벌한다고 해서 진해 시민들의 분노와 억울함이 진압될 수 있을까? 창원시민이 아닌 나로서는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상수 시장이 갈등의 문제에 대처하는 태도가 유가족 사건에 대한 검경의 태도와 유사해보이는 점이 심히 우려스럽다.

 

사실 요즘은 일반인들 중 일부 사람들도 그렇고, 공권력이나 정부나 공무원들도 사건의 경중을 구별할 줄 모르는구나,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뺨을 한 대 때린 원장이 고발되어 어린이집 운영 자격을 박탈당했다가, 재판을 통해 되찾은 사례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판사의 판결은 아이의 훈육을 위해 상처가 나지 않을 정도로 뺨을 한 대 때린 것을 가지고, 구청이 어린이집을 폐쇄한 것은 과하다는 논지였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는 바였다. 아마도 뺨을 맞은 아이의 부모가 구청에 원장을 고발했을 것이고, 구청은 민원이라는 이유로(혹은 그 당시에 어린이집 교사에 의한 아동학대 문제로 여론이 시끄러웠을 수도 있다) 일종의 강경 조치를 취했을 것이며, 당연히 이 강경 조치를 억울하게 여긴 원장은 구청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불량식품 퇴치가 대통령이 강조한 4대악의 하나라는 이유로, 동네 문방구나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팔았음직한 과자 나부랑이를 만들어 판매한 사람들을 검거하면서 무슨 중대범죄 집단을 일망타진이라도 한 것처럼 방송에서 떠드는 모습도 보았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강조한 4대악의 하나인 성범죄를 골프장에서 여러 번 자행한 전 국회의장에 대해서는 경찰은 기자들이 따라붙을 수 없는 새벽 세 시에 소환하여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하긴 윤창중 전 대변인의 국제적인 성추행으로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차원의 망신을 당했는데도, 미국 경찰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만 촉각을 세웠지, 정작 우리나라 검경은 윤창중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다.

 

참 공정하지 못하구나, 란 생각이 저절로 든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남녀불평등이 극심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은 여성들에게 일종의 ‘특혜’를 주어서라도 이 불평등을 일정 정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맞는 이야기다. 공정함이나 정의는 형식적 평등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과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 기득권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과 기득권이 있는 사람쪽이 훨씬 더 유리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한 사회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민주주의가 구현되려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권력이 강경조치를 취하면, 미국과 중국의 위 사례에서도 그렇듯이, 명분으로는 사회 정의와 사회의 질서 안정을 위해서라고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폭력적이면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이 벌어진다. 왜냐하면 공권력은 권력을 ‘가진 쪽’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리한 쪽에 있다. 거기다가 강경조치까지 취하면, 다시 말해 자신이 가진 권력과 유리함을 맘껏 휘두르겠다고 나서면, 그 의도와 상관 없이 불공정하고 ‘불의’한 현실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권력을 쥔 쪽은 언제나 스스로를 정의라고 자처하지만, 그것이 공정한 정의였던 경우는 실제로 많지 않다.

 

게다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윗물이 혼탁한데 아랫물만 맑게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공권력은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에는 눈을 감거나 편의를 봐주고, 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프라이버시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겠다고 한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공권력의 이런 강경조치들은 우리 사회를 더 인정 없는 각박한 사회로 만드는 데나 일조할 뿐이지, 우리 사회의 질서를 잡고 폭력 없는 명랑한 사회로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발언이 도를 넘었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유언비어와 허위사실 유포 역시 문제’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검찰은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대화를 상시 감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보기에도 우리나라 일부 네티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행하는 인격 모독과 명예훼손은 비단 대통령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연예인들을 비롯한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도를 넘었고, 이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뭔가 조치가 취해져야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보기에 이 경우에도 현명한 해결법은 윗물을 맑게 하는 데 있지, 윗물에 오염된 아랫물을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나 지배층이 더러운 아랫물도 자신들한테 유리한 더러움이면 방치하고, 자신들한테 불리한 더러움이면 그 약점을 확대 과장하여 과잉 처벌하는 식으로 처리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문제 해결은 요원한 일이 아니겠는가?

 

P.S. 이 글의 후반부는 인터넷이 안 되는 환경에서 기억에만 의존하여 작성된 터라, 세세한 표현에서 부정확한 부분이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2014. 10. 4. 



날짜

2014. 10. 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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