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열어보기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 멀고느린구름
예쁜 앨버트로스 새 그림에 눈길이 멈추었다가 제목을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냄새는 어떡해?' 였다. 책을 집어 들어 몇 번 들춰보다가 구입을 결정했다. 순전히 그림이 너무 예뻐서였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나우루 공화국에 대한 궁금증은 아주 조금 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대부분 세금이 없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며, 교육+의료가 모두 공짜이며, 빈부 차이도 없고, 국민 모두가 알부자인 나라를 꿈에 그릴 것이다. 그것은 그냥 상상의 나라이지만 생각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따끈따끈해진다. 오! 그런데 그게 상상의 나라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나라였다니!
그렇다. 남태평양의 적도부근에 외로이 떠있는 조그만 섬나라, 나우루 공화국. 그곳이 바로 그런 꿈의 나라였던 것이다. 한 때 나우루 공화국은 미국을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였고, 모든 국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자고 먹고 싸는 일만 하면서도 풍족하게 삶을 영위했다. 현명한 이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이야기가 과거형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그렇다. 꿈의 나라, 나우루는 더 이상 없다. 앨버트로스의 똥이 해초 위에 수 천년간 쌓여서 만들어진 나라 나우루는 현재 국가 파산을 겨우 면하고 있을 정도의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나우루는 한 때 자국민은 전혀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일은 외국인 노동자의 손에 맡겼었다. 나우루의 그런 부유함은 나우루가 가진 인광석이라는 광물자원 때문이었다. 인광석은 비료의 중요한 원료가 된다. 그런데 이 인광석은 거의 나우루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1차,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강대국들의 식민지가 되어 고생했던 나우루 사람들에게 축복이 온 것이었을까?
나우루는 원래 자급자족의 경제로 소박한 삶을 꾸려가던 평화로운 나라였다. 그러던 어느 날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외국인들이 들어와 나우루의 인광석을 훔쳐가기 시작했고, 곧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우루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전쟁과 제국주의의 침입은 나우루 원주민의 영혼마저 변질시켜 버린 것일까. 나우루는 인광석을 이용해 너무나 쉽게 세계 최고 부자나라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아무도 먹기 위해 일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그러나 광물 자원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 21세기가 되어 인광석은 바닥이 나기 시작했고, 한 번도 일해본 적이 없는 나우루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점점 망해갔고, 결국은 파산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나우루의 이야기를 먼 옛날의 동화처럼 풀어 놓는다. 거기에는 아무런 주석도 해석도 없다. 그냥 나우루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요리후지 분페이의 깜찍한 그림과 맞물려 나우루의 이야기는 마치 꾸며낸 동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나우루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후루타 야스시는 시종 객관적인 어조로 이야기를 늘어 놓다가 마지막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들어진 나라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쳐야겠습니다. 약 100년 사이에 이 섬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린 반면 경작지와 고유한 문화는 많이 잃었습니다. 얻은 것과 잃은 것, 어느 쪽이 많은지는 인광석의 섬에서 사는 사람들이 지금부터 생각해야겠지요. 그렇게 보통 생활, 보통 수준의 국가란 어떤 것인지를 배워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보통'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나우루 사람도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다 모를 겁니다."
이 이야기와 함께 황폐화된 나우루의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그 그림 아래에는 911테러로 황폐화된 미국의 모습과 부유한 미국의 모습이 역시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이 세 개의 그림은 모두 '=' 표시로 연결되어 있다. 지은이의 마지막 말까지 더 들어보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나우루 공화국의 전 대통령 클로드마르는 1997년 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지구온난화방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회의가 실패하면 우리나라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또 다른 엄청난 위기가 나우루에게 닥쳐오고 있습니다."
나우루는 그저 남태평양 어딘가에 있는 작은 섬나라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우루의 옛 시절과 번영, 그리고 몰락은 어쩌면 자본주의에 들뜬 우리 지구 전체의 한 축소형은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리는 꿈, 돈을 많이 벌어서 일을 적게 하고 편하게 살아야지... 라는 그 꿈이 과연 정말 행복한 꿈일까. 그 꿈은 나우루의 짧은 부귀처럼 어쩌면 우리를 악몽으로의 길로 유혹하는 허깨비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 돈을 벌지만, 과연 편하게 사는 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조그만 자취방에서 월급 46만원으로 살고 있는 나도 사실 별로 부족함이 없고 편하다. 하지만 이 편함이 곧 행복은 아니다. 또 우리가 알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과학문명의 편리는 결국, 나우루의 인광석처럼 지구의 자연을 파괴하고 학대해서 얻어지는 편리라는 사실이다. 인광석이 사라져가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땅을 파헤쳤던 어리석은 나우루 사람들과 지구의 모든 인류는 별반 차이가 없다.
지금 인류가 누리고 있는 모든 혜택의 90%이상은 화석연료의 도움으로 얻어진 것이다. 이 화석연료의 대장인 '석유'는 2030년이면 바닥이 난다. 하지만 인류는 석유의 사용을 조금도 줄이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는 앨버트로스가 똥을 싸서 하나의 섬을 만든 것만큼의 세월,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세월에 걸쳐 지구가 만들어낸 것이다. 지구가 약 27억년을 걸쳐 축적한 에너지를 어리석은 인류는 불과 100여년 만에 다 써버렸다. 그런 인류가 나우루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클로드마르 나우루 전 대통령의 말을 빌려 마지막으로 한 마디하고 싶다.
"이 회의가 실패하면 지구는 우주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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