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그래도 그 시절만은
- 멀고느린구름
우리 딸 혹시 '제2 김연아'?..학원등록 전쟁 나서(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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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처음에 기사 제목만 보고서는 아, 무분별하게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요즘 세태를 비판하는 기사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기사 내용은 제 생각과는 정 반대이더군요. 오히려 김과장, 이대리 라는 가상의 대기업 사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적극적으로 아이의 스팩을 키워주려는 노력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이것이 훈훈한 아버지의 정이라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기사였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쪽에서는 아이들 급식비를 무상으로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서도 시비가 붙고 있는데, 넉넉한 쪽에서는 아이의 재능과 상관 없이 '견문 넓히기' 차원에서 골프, 피겨 등 고비용 스포츠를 배우게 하고, 방학마다 체험학습 차원에서 해외여행을 간다니. 너무 딴 세상 이야기라 좀 거리감이 느껴지긴 합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노력해 쌓은 부를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간섭 받을 일이 아닐 것입니다.
허나 문제는 좀 다른 곳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기사에서 묘사되고 있는 '우리 아이'의 연령대가 대체로 초등학생 정도로 짐작된다는 것입니다. '조기교육' 광풍에 대한민국이 휩싸여 있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그것에 휩쓸려 다른 집 아이가 하니까 꿀리지 않기 위해 우리 집 아이도! 라는 식으로 교육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 과연 정말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요.
처음에는 아이도 호기심에서 이것저것 배워보겠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하나하나 등록되는 학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소위 '학원 뺑뺑이'의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입니다. 또한 아이가 충분히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해석해낼 수 없을 나이의 해외여행이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견문 넓히기'의 효과가 있을지도 아직 교육학적으로는 물음표의 영역입니다.
'조기교육'이 흔히 내세우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짧고, 경쟁은 치열하고 대비할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사회는 초등학생에게는 중학생 시절을 대비하라고 하고, 중학생에게는 고등학생 시절을 대비하라고 하며, 고등학생에게는 대학생 시절을 대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학생에게는 사회생활을 대비하라고 하죠. 사회인이 되면 다시 결혼을 대비하고, 결혼을 하면 자식교육을, 자식교육을 마치고 나면 노후를 대비해야 합니다. 이렇게 대비만 하고 살다보면 우리는 언제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기의 삶을 만족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다음 시절의 대비차원으로서가 아닌, 지금 이 시절의 빛을 충분히 만끽하며 살 수 있게 될까요.
초등학생시절은 어쩌면 인류가 무한 경쟁사회로 접어든 이후로도 마지막 유토피아였습니다. 어차피 고단함의 연속인 삶에서 그래도 그 시절만은 반짝반짝 빛나는, 어떤 삶을 대비하기 위한 시절이 아니라 그 시절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도록 보호되어야 할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한 내가 아닌, 혹은 무엇이 되기 이전의 내가 아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고 행복할 수 있을 마지막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른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을 파괴함으로써 가장 비교육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 초딩은 초딩 같지도 않다. 지나치게 영악하거나 빨리 어른문화에 물든 요즘 아이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 말이 어른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과연 우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있는 것일까요. 유구무언입니다.
2015.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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